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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문명의 발단
인간의 역사는 원인 집단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다. 이 최초의 인류공동체는 자신의 조상인 원인류한테서 물려받은 기술에 크게 의존했다. 완전한 인간집단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인간과 유사한 동물을 구분하는 주요한 특징은 유아기와 소년기가 길어지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생활의 기술을 가르칠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인해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의 느린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압도했을 때, 엄밀한 의미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p.57)
최초의 인간집단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 경위는 확실하지 않다. 또한 언제 어디에서 현재의 인종이 형성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상이한 인간집단 간의 문화적 차이는 현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작은 밴드를 이루고 석기를 이용했으며 수렵을 통해 얻은 동물의 고기를 주식으로 삼았다. 그러던 중에 이웃한 밴드들이 모여 혼인을 추진하거나 때로는 반목을 하기도 했다. (p.59)
인류의 역사를 진전시킨 생태적 변화는 최후의 대륙빙하가 북반구에서 후퇴한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결과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서 매머드, 순록, 들소를 비롯한 다수의 아한대성 초식동물이 번식했다. 이 초식동물ㄷ르은 원시인과 대형 육식동물의 풍부한 식량자원이었다. 수렵민들은 재빨리 사냥법을 터득했다. (p.61)
원시수렵 밴드가 남아메리카 남단의 티엘라델푸에고에 도달했을 무렵, 서아시아 일대에서는 인간의 새로운 생활양식이 확립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북부와 동부에 위치한 소수의 인간사회가 식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함으로써 자연환경을 변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기원전 8500~7000년 경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농경민들은 수렵민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세 가지 도구를 필요로 했다. 나무를 자르기 위한 도끼, 파종하기 전에 부식된 토양을 파서 일구기 위한 괭이, 익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한 낫이 그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석기 시대 특유의 마제석기가 탄생했다. (p.63)
서아시아에서 시작된 곡물재배와 가축사육은 인간의 역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을 만하다. 바로 그런 생활양식에서 최초의 문명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문명의 기반을 제공한 곳은 수메르 땅이었다. 수메르는 페르시아 만에 접한 티그리스 및 유프라테스 강 하류의 충적평야에 위치했다. 이 지역에서는 강물을 끌어다 경작지에 대지 않는 한 곡물수확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관개수로의 건설과 관리는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집단노동 뿐 아니라 엄격한 사회적 규율을 필요로 했다. 수메르에서는 신을 위한 신관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체계를 통해 수천 명의 노동력이 대규모 공사를 완성하기 위해 동원될 수 있었다. (p.67)
수메르인의 기술은 매우 신속하게 발전했다. 청동 세공품, 물레로 만든 토기, 바퀴 달린 수레, 범선 및 독특한 예술양식도 단기간에 확립되었다. 그러나 더욱 중대한 것은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관들은 천체운동을 관찰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법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조직화된 관개공사와 그것이 초래한 각종 기술적, 사회적 결과는 주로 계절을 예언하는 능력에 기초해 사회적 리더십을 장악한 신관의 지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p.68)
당시 고대 신관들은 자연과 인간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논리 정연한 신학체계를 수립했다. 각 신의 성격은 인간과 동일하다고 여겨졌고 신들은 신전이라는 집에 살았고, 인간의 영혼이 육체에 깃들어 있듯이 신상에 존재했다. 신은 전조와 예언으로 응답했고 전문가들은 신의 뜻을 해독했다. 이런 신앙체계는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p.70)
수메르에서 비롯된 신관의 발명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 중에 하나는 말을 기록하는 수단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표준적인 음절을 나타내는 충분한 수의 그림문자가 만들어지자 문자 사용자들은 말하는 모든 소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후 문명사회의 효율적인 운용은 문자로 인해 중대된 정보처리능력에 크게 의존했다. (p.72)
수메르지역은 수리시설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로 인해 수메르의 도시들은 아주 좋은 공격목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메르 문명은 원래 독립된 도시들 내부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각 지방의 주민은 자기가 사는 도시에 대한 깊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통일된 제국을 수립하려는 온갖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내부의 평화를 지키고 외부의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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